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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생애와 업적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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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년 88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자 예수회 출신으로, 청빈한 삶과 교회 개혁,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기후 위기 대응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생애와 업적 총정리 (환경, 개혁, 평화의 상징)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58년 예수회에 입회,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 되었고, 2001년 추기경 서임 후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벗’인 아시시의 성인을 기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그의 사목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청빈과 교회 개혁의 상징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전용 궁을 거부하고 성녀 마르타 호텔에서 공동체와 함께 거주했습니다.
그는 화려한 복식과 전통을 내려놓고, 겸손과 검소함을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또한 바티칸의 재정 투명성을 강화하고, 성직자 성범죄에 단호히 대응하며 교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 힘썼습니다.
2019년에는 성학대 은폐를 금지하는 교회법을 도입하며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목소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병원’이라며, 노숙인, 이민자, 소수자, 장애인과 끊임없이 함께했습니다.
지중해 난민 사망 사건 이후 바티칸 근처에 난민 가족을 직접 초청했고, 2019년에는 그리스 난민캠프를 방문해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생태 환경을 위한 회칙 『찬미받으소서』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경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연계를 지적했습니다.
“지구는 우리의 공동의 집이며, 그 집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라며 국제사회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회칙은 종교계 최초로 환경문제를 다룬 문헌으로, 이후 유엔 COP 회의 등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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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교회 내 역할 확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적인 가톨릭 전통 속에서도 여성의 교회 내 지위 향상을 추진했습니다.
여성 차관 임명, 평신도 여성의 독서직·시종직 허용 등 교회 구조 내 변화를 시도하며 성평등의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종교 간 평화 대화의 선도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슬람, 유대교, 불교 지도자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종교 간 평화 대화를 촉진했습니다.
2019년 아부다비에서 발표한 **‘인간의 형제애 선언’**은 종교 간 화해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한민국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방문하여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도를 전했습니다.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은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겼습니다.
또한 남북화해를 지지하며, 한국을 평화의 상징적 국가로 바라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표 어록

  • “나는 큰 죄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습니다.”
  • “동성애자인 사람이 선한 의지를 가졌다면 내가 그를 정죄할 수 없다.”
  • “지구는 우리의 집입니다. 함께 보호합시다.”
  • “교회는 벽 안에 있지 말고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그리고 남겨진 유산

2025년 4월 21일, 교황은 성녀 마르타 호텔에서 선종했습니다.
그는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며 마지막까지 신자들과 함께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를 빕니다”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지도자 그 이상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가르침은 시대를 넘어 인류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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